여긴 화진포다.
파도 소리에 깼다.
새벽 한시다.
거센 비바람이 부는지 밤새 파도소리는 요란하다.
짙은 어둠이다.
소리외는 없다.
검은 어둠뿐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위의 방랑자가 짙은 운무를 내려다보듯 나는 나는 지금 어둠속 바다를 보며 바다를 듣는다. 바다는 지금 온 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내게 전하듯 온몸으로 운다.
어제 아침 새벽에
집을 떠나 천호역 6번출구에서 8 시 반에 일흔 두명의 베트랑들을 만났다.
임관 50주년 입교 54주년의 기념행사에 모인 친구들이 약속 시간 보다 모두 이른 시간에 모여들었다. 생도시절 외출외박에서 귀대하는 점호시간 21시가 되면 시계탑의 챠임벨이 울리고 나서 들어오면 미귀였다. 그래서 였을까? 시간 관념은 지금도 모두들 가슴에 새긴 신조가 된듯 정확하다.
동기생들이 갖은 모임에서는
처음으로
버스에 탄 38명의 친구들은 화진포로 오는 내내 자신의 삶과 인생에 대해 자유롭게 스피치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진한 감동을 느끼며 경청했다.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나의 기우였다,
한 노인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쯤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짧고 굵게 압축된 친구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서관 서른 여덟개쯤을 두루 다니며 섭렵한듯 짙은 감동과 공감을 느꼈던 시간이라 몹시도 뜻깊었다.
54년이면
강산이 무려 다섯번쯤 바꼈을 시간이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같다.
그럼에도 각각은 달랐고 조화로웠다.
아마도 세상에 이런 인연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르나 같고
같은데 다른 친구들 수백명과 가족들이 하나된 인연의 모임!
50년이 지났음에도 모두가 하나같이 같음은 태능골 육사의 가마솥에서 익은 밥을 나누었기 때문이고. 고되고 억센 훈련으로 흘린 땀방울로 화랑대을 매섭게 덮은 비바람 눈보라를 함께 넘어선 전우애가 만들어 가슴에 화인으로 새긴 훈장같은 멍에 때문일 것이고 또 다름이 공존되는 이유는 우린 모두 자신의 고유성을 지닌 삶을 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이루어 내지 못한 우리들 각자의 훈장 같은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모습을 참 아름답게 느낀다. 같되 다른 우리들의 어울림이 나는 자랑스럽다.
그러한 우리가 만들어 낸 자유와 자유의 연대는 어쩌면 위대함의 깃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깃발은 우리만의 정체성으로 유니크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 핀 이야기다.
다양한 자원봉사로 삶의 의미를 다지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산뜻했다.
노래강사
영어 교육강사
교회봉사
웃음전도사
영화 제작
시인
소설가
여행가
단축마라톤을 즐기는 친구
매년 1회 이상 공룡능선을 넘는 친구
매일 2만보에서 3만보를 걷는 친구
다양한 건강법을 실천하는 친구들
취미생활도 수준급이다.
섹스폰 연주
피리와 대금 연주
민요와 창
사진작가
낚시
등등
나열하기에 한도 없는 친구들의 여유로운 모습들이었다
일흔 두개의 삶이 화진포에 모여드니
바다는 밤새워 교향곡을 들여주려 함인가?
철썩철썩
싸와 싸~
파도는 쉬지 않고 삶을 토해내고 있다.
내일은 또 다른 일정을 함께 하고
다시 우린 뿔뿔이
각자의 삶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자신들 만의
또 하나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